더 무서운 건 현실 너머의 환상마저 공포에 잠식돼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돌아다니다가 다시 조선에 들어온 이 탁본을 전형필이 전동(현 인사동)에서 구해 가져온 것이다.아직 와세다대 법학부 학생이던 22세의 전형필이 노년의 오세창을 처음 찾아갔을 때의 일이었다.
성벽 돌에 한자로 새긴 이 기록물은 지금까지 총 6개가 발견됐는데.이때 오세창 앞에 전형필이 조심스럽게 내민 물건이 이 고구려 평양성 석편 탁본이었다.앞으로 어르신의 지도를 구하고자 합니다.
이런저런 사연을 다 알고 전시를 보면 더 좋겠지만.원래 전형필과 오세창은 나이 차가 많았다.
그리고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석편 실물을 꺼내왔다.
그런데 이 석편 실물은 그사이 오세창이 풍운의 세월을 겪던 일본 망명 시절.전시실에는 더 훌륭한 작품이 많이 나와 있었다.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산골짜기 물과 푸른 소나무)이라는 호를 주었고.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감식안을 지닌 문예계 ‘지존이 되었다.오세창은 부친이 평생 사비를 털어 모은 어마어마한 양의 중국과 조선의 서적과 유물을 보고 자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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